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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요루의 기록

Ideal_1st
2023-12-19 21:47:55 58 0 0

내게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을 떠올려본다. 낮에는 시장에서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살갑게 말을 붙여 굶주린 배를 채우고, 밤에는 볕이 들지 않는 퀴퀴한 응달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더랬지.


그래도 괜찮다. 낮이 되면 다시 어두운 이곳에도 볕이 들 테지. 어쩌면 언젠가 버림받은 내 삶도 구원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적처럼 한 남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자신을 데키아라 소개한 남자는 내게 영원한 낮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곤 살면서 오늘을 연명하는 것밖에 해본 적 없는 내게 다가올 내일을 위한 사명을 주었다. 


스승님은 어째서 나를 선택하신 걸까? 무언가 해내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도리어 나를 옥죄는 듯한 기분이었다.


사명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에 어깨가 무거워질 때면, 바아를 찾아갔다. 바아는 오직 사명만을 바라보고 연구에 전념하느라 자신을 가꾸지 않아서인지, 외양만 봐서는 어리숙해 보였다.


큰일을 해내겠다는 자가 자신을 스스로 가꾸지도 않는 모습이라니, 우습기도 하지. 그래도 그런 바아의 모습을 보면 내가 쓸모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나아지곤 했다.


스승님은 오르와 내게 거친 땅으로 향하라 하셨다. 그리고는 덧붙이셨다.


최후의 날 우리를 위협할 '검은 침탈자'들의 요새는 이곳과 달리, 때에 따라 타오르는 낮이 지속될 수도, 시리도록 깜깜한 밤이 지속될 수도 있다고.


그래서, 그들의 요새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환경의 땅을 살펴보고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다시 바깥세상에 홀로 남겨질 거란 두려움이 앞섰지만, 매일 똑같은 풍경을 벗어나 살아 숨 쉬는 생명체들을 마주할 생각에 내심 설레기도 했다.


바깥세상으로 떠나기 이틀 전, 스승님이 나를 찾아오셨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불안해하자, 스승님은 따뜻하게 웃으며 나를 격려해주셨다.


"사랑하는 나의 요루야. 네가 활개를 펼 땅에는 신비로운 돌, 광명석이 즐비할 것이다. 너는 이 땅에 내릴 미래의 중심이니, 우리의 미래를 위해 그 돌을 치열히 조사해다오. 그리고 네가 이 요새로 돌아오거든, 나와 오르와 함께 마저 연구하도록 하자."


그래. 바아, 시카와는 달리 오르와 함께 떠난다고 생각하니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참에 오르와도 친해져야겠어.


요루나키아는 빼곡히 들어찬 녹음과 힘차게 흐르는 물결 위로 찬란한 빛이 넘실대는 땅이었다. 도착한 이래로 지상에서 본 생명체라고는 식물들밖에 없었지만, 말 그대로 축복의 땅 위에서 무수한 생명들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보였다.


흙냄새를 따라 걷다 도착한 곳에서 내 키의 반절만 한 생명체들을 만났다. 그들은 갑작스러운 이방인의 방문에 많이 놀랐는지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가, 내게 공격 의지가 없어 보이자 슬금슬금 걸음을 내디뎌 다가왔다.


작은 생명체들은 나를 둘러싸고 춤을 추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자세히 귀를 기울여보니, 그들이 내뱉는 문장은 항상 '올'과 '룬'으로 끝나곤 했다.


나는 그들을 '올룬족'이라 부르기로 했다. 올룬족은 울창한 숲에서 나무와 어울려 살며 매일 노래하고 춤추는 종족이었다.


올룬족의 손에 이끌려 그들의 터전으로 향하는 길, 스스로 빛을 내는 돌을 발견했다. 아마 이것이 스승님이 말했던 광명석이겠지. 광명석을 쥐어 들자 넘실대는 기운이 두 손안에서 태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낯선 감각에 멍하니 돌을 내려보고 있으니, 올룬족이 내 옷을 붙들며 종알댔다. 당장이라도 그만두라고 말하는 것 같아 슬며시 돌을 내려놓자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밤에 올룬족의 눈을 피해 몰래 살펴봐야겠다.


올룬족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풍습을 익히기도 여러 해, 나는 광명석 연구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공부했다. 그리고, 그제야 이 아름다운 숲에서 지상 생물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로, 거대 종족 레크라가 요루나키아 지하에서 숨 쉬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 설명해달라며 보채는 나를 보고 올룬족은 나뭇가지를 쥐어 들었다. 땅 아래에 잠들어 있는 거대 종족과 나무뿌리를 통해 교감하던 그들이었기에, 그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건 마치 거대한 암석...거상과 같아 보였다.


또다시 여러 해가 지나고, 다시 내 구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쉬울 만큼 행복한 여정을 즐겼다고 생각할 무렵이었다.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물가에 놓인 큼지막한 광명석이 물기를 머금고 반짝이고 있었다. 홀린 듯이 광명석에게 손을 뻗었던 나는 그대로 몸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수십 개의 광명석이 물 위로 떠 오르고… 그 아래, 거대한 생명체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광명석을 등에 박은 거대한 악어였다. 그것의 꼬리에 몸이 날아가 의식을 잃은 것은 순식간이었다. 절벽 아래로 떨어져 기절한 나를 오르가 찾아내어 깨우지 않았다면, 나는 그대로 악어의 배 속으로 삼켜져 영영 요새로 돌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아득한 의식 속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오르만 선명하게 보였다. 오르는... 오르는 어떻게 알고 나를 찾아온 거지? 허리를 다친 충격에 입도 벙긋하지 못하는 내게, 오르는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검은 여신님께서 내게 알려주셨어."


모두가 다시 아토락시온으로 모였다. 분명 바깥세상으로 떠나기 전에는 모두 비슷한 얼굴과 표정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떨어져 있던 시간이 오래되어서인지, 다른 데키마들의 얼굴이 사뭇 달라 보였다.


태양에 잔뜩 그을린 바아의 얼굴은 전보다 선이 제법 굵어졌다. 그럼에도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여전했다.


다음 보름달이 뜨기 전까지 실타래를 완성해야 하는데... 좀처럼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골머리를 앓고 있자, 바아와 시카가 도움이 되어주겠다며 각각 자신들의 구역으로 나를 초대했다. 역시, 내가 미래의 중심이라는 뜻이겠지.


도착한 바아의 요새는 완벽하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을 듯했다. 정교하게 짜인 실타래와 흐트러짐 없는 병기들은 마치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보였다. 입이 절로 벌어졌다. 요루나키아의 낮을 밝혀 온 생명을 싱그럽게 하던 태양이 떠올랐다.


도대체, 바깥세상에서 무엇을 보고 왔길래 이런 설계가 가능하단 말이야? 바아가... 바아가 달라 보인다.


이윽고 시카의 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긴 나는 절로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바아의 것을 빼닮았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병기들과 어수선한 실타래가 시카의 머릿속을 그대로 빚어놓은 듯했다.


어째서 시카는 끊임없이 바아와 자신을 비교하는 거지? 바아를 인정하고, 차근차근 연구해 나가면 될 일 아니야?


이해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이해할 생각도 없지만, 바깥세상에 다녀온 뒤로 시카의 낯빛이 어두웠던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태양의 요새에서 내가 마주하고 온 빛을 떠올리며, 시카에게 광명석을 건넸다. 불쌍한 시카, 내가 없으면 어쩌려고 그래?


광명석을 선물한 이후로, 시카가 나를 부쩍 자주 찾는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다는 게 이렇게 쉬운 일일 줄이야! 시카의 눈동자는 나를 마주할 때마다 마치 사랑에 빠진 상대를 보는 것처럼 크게 일렁였다.


파도치는 눈을 보고 있으면 확신이 들었다. 시카는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그래, 빛이 발 디딜 엄두조차 내지 않는 심해에서 더욱더 낮을 갈망하도록 해. 너는 내가 만들어 내가 움직이는 병기처럼 나의 수족과 같은 존재가 되어주면 돼.


스승님께 끔찍한 평가를 받은 이후, 대형 고대 병기를 옮길 특수 장치를 완벽하게 만들어 보이겠다며 자신 있게 떵떵댔지만, 당장 광명석 연구조차 시원찮아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해결책을 떠올리다가, 문득 바아가 구현해낸 태양의 요새가 떠올라 그의 구역으로 찾아갔다.


"날 좀 도와줄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아는 주저 없이 나를 돕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꼬박 10일이라는 시간 동안 먹고 자는 것도 잊어가며 특수 장치를 만들어냈다. 나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주다니. 가슴이 뛰었다.


바아가 제 구역으로 돌아간 뒤, 나는 병기를 만드는 일을 잠시 미뤘다. 그리고 그가 다녀간 흔적들을 눈으로 확인하며 특수 장치를 만들던 그의 모습을 곱씹었다.


삼 일 동안 밤에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밤새 바아의 얼굴이 눈앞을 떠나지 않아서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오르의 요새로 향했다. 우리가 각자 바깥세상으로 떠나기 전, 오르와 바아는 연인이었으니까. 모든 것을 확실히 하고 싶었다.


그런데, 오르는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녀의 구역에 빼곡하게 늘어선 검은 여신상만 봐도 그랬다. 그래, 나는 이미 알고 있었잖아. 신을 섬기는 것은 용납할 수 있어. 그렇지만... 그렇지만 왜 바아에게 그런 취급을 받아 가면서도 계속 만나는 거야? 나라면, 더 잘 해낼 수 있을 텐데.


오르의 단도를 훔쳐 온 이후,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바아와 오르 사이에 생긴 틈을 비집고 들어갈 기회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그러고 보니, 오르가 신을 섬긴다는 사실을 바아가 알게 된다면 분명 그녀에게 크게 실망할 것이다. 


내가 직접 가서 말할까? 아니야. 아니야. 무슨 방법이 있을 텐데. 바아에게 검은 여신의 존재를 알 수 있도록 하는 방법...


...그래. 있다.


나의 시카야. 네가 나서줘야겠어. 


오르의 요새에 들러 내게 속마음을 털어놓아도 좋다고 말했다. 오르는 한참을 머뭇대던 끝에 작은 목소리로 검은 여신에 관한 이야기만 늘어놓았지만, 나는 그 어떤 거부감도 없다는 듯 몇 날 며칠을 들어주었다. 오르, 이 비밀은 너와 나, 그리고 검은 여신님만이 알고 있을 거야. 모든 진실은 차가운 달빛 아래 눈을 감을 거야.


이 방법이라면, 바아도, 시카도… 심지어 오르조차도 나를 의심하지 않겠지.


오늘은 오르의 구역이 아닌 시카의 구역을 찾았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퍽 기뻐 보이는 시카에게 말했다.


"시카, 어떡하지? 간만에 네게 줄 선물이 있었는데, 그만 오르의 구역에 두고 왔지 뭐야?"


이제 모든 것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된 병기가 알아서 움직여줄 테다. 하하!


다음 날, 바아는 새로운 규율을 만들었다. 


"모든 데키마는 검은 침탈자의 침공이 도래한 날이 오면 힘을 합쳐야 한다."

"모든 데키마는 아토락시온에서 습득한 지식을 철저히 비밀로 한다."

"모든 데키마는 각자의 공간을 존중하고, 결코 허락 없이 방문하지 않는다.

"모든 데키마는 서로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바아, 오늘 아침 네 기분이 좋지 않았던 이유를 나는 알 것 같아. 그래 좋아. 정말 시카가 내 뜻대로 움직인 모양이야. 하하하! 난 정말 천재라니까!


바아, 이래도 모르겠어? 너처럼 눈부신 태양에게 어울리는 건, 나밖에 없어.


커다란 보름달이 뜬 밤.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이 그때라는 걸. 바아의 요새로 향하는 걸음마다 확신과 망설임이 마음을 번갈아 들쑤셨다.


결심이 흔들릴 때면, 오르의 단도를 쓰다듬으며 다시금 단도에 적힌 문구를 되새겼다. 그리고 그대로 바아에게 속삭였다.


"사랑하는 나의 바아. 우리의 낙원은, 오직 검은 여신의 허락 안에서만 완성될 거야."

 

처음이었다. 항상 견고하게 자리를 지켜왔던 바아의 눈이 혼란으로 흔들린 것은.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다시금 속삭였다.


"넌 오르를 가질 수 없어, 그 애는 여신의 품에 안겼거든."


"덤불은 빛을 가리지. 가시는 모든 것을 할퀴어. 그 안엔 어둠과 축축함, 죽음만이 자리 잡고 있지.


하지만 나는 달라. 모든 햇살을 안아줄 수 있어. 그 햇살로 새로운 생명을 피워내고 함께 살아가지.


태양인 널 뒷받침해줄 수 있는 건 오직 나 뿐이야."


시카가 나를 찾아왔다. 간밤의 일을 어떻게 알았는지 분노로 가득 찬 눈을 한 채였다. 더 이상 가볍게 일렁이던 파도가 아니라 거센 해일처럼 보였다.


"시카, 화내지 마. 넌 내게 단순한 친구 이상의 존재니까."


무슨 말이냐며 해일이 주춤하는 기색을 보이자, 그 앞에서는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내가 오르에 비해 모든 면에서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시켜주잖아?!"


시카의 얼굴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담고 있었다.


달빛 아래서 태양을 삼켰던 그날 밤 이후로, 바아는 그간 주린 배를 채우기 급급한 사람처럼 나를 찾아댔다. 지난 며칠간 그가 내 숲을 찾아오지 않는 날을 세는 것이 더 쉬울 정도였다. 


고민이 가득한 얼굴을 한 채로 숲에 발을 내디뎠다가도, 금세 돌변한 눈빛으로 내게 달려드는 걸 볼 때면 머릿속이 희열로 물들었다. 이제 바아도 온전히 내 것이 되어가는 거야. 하하!


바아가 보내온 병기들을 보며 확신했다. 시카에 이어, 바아의 마음도 내게 넘어왔음을. 시카의 구역에서 비틀대던 병기와는 달리, 바아의 병기는 원래 내 요새에 있었던 것처럼 자유롭게 움직였다. 


나는 바아가 보낸 병기와 내가 만든 병기의 짝을 맞추어 협동 훈련을 했다. 검은 여신의 것이 되어가고 있는 오르는 상상할 수 없는 일상.


그리고 오르는... 잠깐! 왜 자꾸 오르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거야?! 정말 기분 나빠!


결전의 날, 내 발걸음은 왜 바아마키아로 이끌렸을까? 바아마키아는 텅 비어있었다.

역시... 가장 먼저 달려 나간 거구나! 그때, 뒤돌아 나가려던 찰나, 거대한 병기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 있던 건 "루크레시아"... 여신이 부르는 오르의 이름. 바아는 나몰래 오르를 조각해 왔던 것이다. 대체… 언제부터? …어쩌면 이 정도는 용서해줄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너는 내 마음을 아프게 한 대가를 치러야 해.


나는 출전하지 않을 거야. 바아, 내가 없는 네가 얼마나 무능한지 깨닫기를.


그날, 정말로 검은 침탈자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아토락시온이 무너진 것은... 검은 침탈자 때문이 아니었다.


바아는 스승님의 기억을 잃게 하고, 검은돌을 빼돌린 것이 시카라고 의심했다. 시카는 당연하게도 오르를 지목했다. 그러자 바아가 아연실색하며 오르를 감쌌다. 검은 여신, 오르가 신을 섬긴다는 사실 자체는 네게 상관없는 거였어.


나는 내 생각보다도 태연하게 바아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내게 널 우상처럼 보이게 했던 모든 껍데기가 침탈자로 인해서 모두 벗겨졌기 때문일지도.


"그러면 답 나왔네. 바아 네가 침탈자들에게 진 책임을 우리한테 돌리려고 그러는 거지?"


냉담하게 말하자 시카와 바아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바아는 끝내 자신을 증명해줄 데키마로 오르를 선택했다. 바아, 오르를 가진 너를 갖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썼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하하. 그럼 지금 내게 남은 것은 뭐지? 나는 모든 걸 잃었다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아무것도...차가운 분노가 들끓었다.


일순간이었다. 평생을 고결한 척 살았던 바아가 전에 없이 극심한 분노와 함께 칼을 휘둘렀던 것은. 정확하게 중심이 찔린 타리브레의 문은 기괴한 파열음을 내며 부서졌다. 


"너희와 함께 침탈자를 물리칠 방법이 없다면, 차라리 같이 죽는 편을 택하겠어."


태양에 닿기 위해 지나치게 발버둥 쳤던 게 문제였을까? 모든 것이 재조차 남지 않고 불타 없어진 것만 같다. 아니, 나 때문이 아니야. 나의 미래는 네가 망친 거야. 바아. 오지도 않을 내일을 기다리게 만든 데키아와, 내일이 오지도 못하도록 모든 걸 불살라버린 너 때문이야.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네가 무능해서야.


모든 것이 끝났다. 그럼에도 모든 기억을 잃은 데키아가 내게 다시 한번 사명에 관해 설명했다. 가당치도 않은 소리.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그에게 모두 쏟아냈다.


이해할 수 없어! 설명할 수 없어! 왜! 검은 침탈자는 예언했으면서… 우리의 미래는 예언하지 못한 거야? 다 당신 잘못이야. 내게… 당장 손에 쥐지도 못할 미래를 맡기고... 난 그 공허를 채우느라 이리저리 방황한 것뿐이야. 다가올 미래의 중심은 나라며! 내가 모두를 가졌으면 이런 일이 없었잖아!!


모든 게 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 때문이야!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당신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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