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잡담! E스포츠에 대한 고찰

조니공공칠빵
2022-11-29 21:19:54 71 2 4

    결국 DRX의 환상동화는 팀 완전 해체라는, 씁쓸하고도 비극적인 결말을 맞고 말았습니다. 다시 한 번 그 멤버로 기적을 써내려가길 기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만, 결국 2022년의 DRX는 이렇게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했던 걸까요? 물론 많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팀 팬덤'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E스포츠 팬들의 대부분이 팀이 아니라 선수 개개인의 팬이기 때문에 기업의 입장에서는 큰 투자를 선뜻 하기 어려운 거죠.

그렇다면 왜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에는 팀 팬덤이 없는 걸까요?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를 좀 적어 보려고 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게시물의 내용은 모두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저는 E스포츠 관계자도 아니고 전문 분석가도 아닙니다. 그저 스포츠와 E스포츠를 사랑하는 고등학생일 뿐입니다. 비판과 반론은 환영하지만 비난은 반사하겠습니다.

     사실 'E스포츠에 팀 팬덤이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하는 의문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다른 스포츠처럼 연고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짤은 선수 생명과 선수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이적시장 상황 탓에 한 팀에서 선수 생활을 보내는 원클럽맨이나 프랜차이즈 스타도 탄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스포츠에서 연고지는 팀에 충성하는 팬을 확보할 수 있는 편리하고도 확실한 수단입니다. 당장 야구, 축구의 문외한들, 특히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사는 지역의 팀을 응원하게 되죠. 소속감을 확실하게 부여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스포츠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닙니다. 연고지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오버워치 리그나 LPL을 보면 기성 스포츠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팀 팬덤이 형성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E스포츠에 연고지 제도를 채택하기는 어렵습니다. 역시 예산 때문이죠.

E스포츠는 현장 직관의 중요성이 희박한 스포츠입니다. 사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기는 하지만, 직관을 가지 않아서 소속감이 생기지 않고, 소속감이 없으니 직관을 안 가는 식이죠. 따라서 지역마다 E스포츠 경기장을 짓는다 한들, 수요가 크지 않아서 적자 일변도일 겁니다.

이는 야구의 팬 문화와 비교하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야구는 야구보다 야구장이 좋아서 직관을 가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직관이 중요한 스포츠입니다. 그리고 온, 오프라인 양쪽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야구 팬의 소속감은 하늘을 찌를 정도죠. 소속감이 도를 넘어서 다른 팀에 대한 적개심으로 드러날 정도니까요.

팀을 지탱하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적다는 것도 원인 중 하나일 겁니다. 프랜차이즈 스타는 팬을 끌어모으는 힘이 있습니다. 해외 축구의 메시나 손흥민, 국내야구의 이정후 등 인기가 많은 선수는 그 팀의 팬을 늘리는 아주 좋은 수단이죠.

주의할 점은 프랜차이즈 스타는 그저 '유명하고 인기 많은 선수'가 아니라는 겁니다. 프랜차이즈 스타는 '오랜 기간 동안 한 팀에서 선수 생활을 해 그 팀의 정체성을 일부 분담하는 선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선수들로 예를 들어 보면 10년 동안 T1에서 경기를 뛰고, 이제는 T1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페이커 선수는 프랜차이즈 스타지만, 비슷한 기간 동안 여러 팀에서 활동해서 한 팀의 정체성은 없는 데프트 선수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에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거의 없습니다. LCK에서 확실히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볼 수 있는 선수는 페이커 선수 단 한 명 뿐이고, 담원의 쇼메이커 선수가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프랜차이즈 스타가 단 한 팀에만 존재하게 되면 팀 팬덤 간의 힘 차이가 너무 커진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 문제가 곪고 곪아서 터진 게 얼마 전의 페이커 패싱 누명 사건이었죠. 페이커라는 프랜차이즈 스타의 존재로 인해서 T1의 팬덤이 타 팬덤에 비해 과하게 강해졌고, 그 결과 자신들만의 힘으로 여론을 만들어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에서 프랜차이즈 스타가 탄생하기 어려운 까닭은 짤은 선수 생명과 선수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이적시장 상황 때문일 겁니다. E스포츠 선수의 평균 수명은 5년 정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선수들은 몸값을 올리려고 1~2년의 짧은 계약을 하고, 또 선수들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는 거죠.

문제는 이런 식의 계약이 계속되면 한 팀에 남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아무리 선수 본인이 팀에 잔류하길 원한다고 해도, 구단 입장에서는 계속되는 재계약이 부담스럽기 때문이죠. 특히 좋은 성적을 냈다면 연봉까지 천정부지로 치솟으니까 말이죠. 이 때문에 선수들은 이적을 상당히 자주 하게 되고, 팀 로스터가 계속 바뀌니 팬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죠.

다른 부가적인 원인으로는 팀에 정을 붙이기가 어렵다는 점이 있겠습니다. 앞에서 얘기했던 선수들의 잦은 이적 문제도 그렇고, 사실 경기 수도 기성 스포츠보다 너무 적거든요.

MSI나 롤드컵을 나가지 않는 팀이라면 한 시즌에 16게임, 1년에 32게임이 팬들이 볼 수 있는 경기의 전부입니다. 다시 한 번 야구와 비교해 볼까요. 현재 KBO 팀들은 한 시즌에 144경기를 치릅니다. 즉 한 시즌을 기준으로 볼 때 리그 오브 레전드의 한 경기는 야구의 아홉 경기와 같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니 선수들도, 팬도 모든 경기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고, 팀에 정을 붙이기도 어려운 겁니다. 1년에 몇 번 이기지도 못하는 팀을 누가 응원하고 싶어할까요. 3할 2푼 4리, 마치 타율 같은 승률과 함께 꼴등으로 올해 시즌을 마감한 한화 이글스도 46경기는 이겼습니다. 반면 직전 시즌을 꼴등으로 마감한 한화생명 E스포츠는 겨우 2경기밖에 못 이겼습니다. 근데 둘다 한화네요. 

     아직 E스포츠를 '스포츠'라고 부르기에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진짜 스포츠라기엔 아직 어설픈 부분도 많고, 다듬어야 할 부분도 많거든요.

물론 앞으로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문제는 고칠 수 있는 거고, 천천히 다듬어 가면 되는 거니까요. E스포츠는 언젠가 진짜 스포츠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그게 리그 오브 레전드일지는 모르겠네요. 문제가 있는 건 둘째치고 그걸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조차 잘 모르겠거든요.

리그 오브 레전드는 '스포츠가 되려다 실패한 게임' 혹은 'E스포츠 대중화의 선구자' 정도로 기억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즐기고 사랑했던 게임이 스포츠였노라고 기억하고 싶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 좋은 밤, 좋은 아침, 좋은 점심 되세요.

후원댓글 4
댓글 4개  
이전 댓글 더 보기
이 글에 댓글을 달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해 보세요.
▼아랫글 내맘대로 영화리뷰 - 탑건:매버릭 편 조니공공칠빵
※공지사항※땃쥐 주간 일정표!꾸끼의 일상!땃쥐의 일상!뚜지의 일상!오늘의 하이라이트!다채로운 정보들잡담!컨텐츠/노래/게임 추천!팬아트!땃방송 클립/캡쳐 !
1
컨텐츠/노래/게임 추천!
갑자기 해보는 노래추천(JP Cooper - All This Love) [1]
조니공공칠빵
02-25
»
잡담!
E스포츠에 대한 고찰 [4]
조니공공칠빵
11-29
2
09-03
1
꾸끼의 일상!
햇볕이 좋아서 [2]
Broadcaster 따땃쥐
04-09
2
다채로운 정보들
무기의 역사 - 소총편 [3]
조니공공칠빵
03-20
1
뚜지의 일상!
학생들이 쓴 책을 보다가 [4]
Moderator 땃쥐네가장_나싱
03-18
2
잡담!
더 배트맨을 보고 왔읍니다 [3]
조니공공칠빵
03-12
1
다채로운 정보들
'망치와 모루'가 무엇일까?
조니공공칠빵
03-05
1
다채로운 정보들
태평양 전쟁 7편 [4]
조니공공칠빵
02-27
2
다채로운 정보들
태평양 전쟁 6편 [2]
조니공공칠빵
02-15
2
뚜지의 일상!
태평양 전쟁 5편 [4]
조니공공칠빵
02-13
2
다채로운 정보들
사이온을 이기는 방법 [4]
조니공공칠빵
02-12
2
다채로운 정보들
태평양 전쟁 4편 [6]
조니공공칠빵
02-09
1
다채로운 정보들
태평양 전쟁 특별편 [4]
조니공공칠빵
02-08
1
땃쥐의 일상!
오늘 가족사진 촬영다녀왔습니다 [5]
Broadcaster 따땃쥐
02-07
2
다채로운 정보들
태평양 전쟁 3편 [2]
조니공공칠빵
02-07
2
다채로운 정보들
태평양 전쟁 2편 [4]
조니공공칠빵
02-06
2
땃쥐의 일상!
마트서 [3]
Broadcaster 따땃쥐
02-05
2
02-05
1
다채로운 정보들
우르곳이 구린 15가지 이유 [3]
조니공공칠빵
02-04
2
02-02
2
다채로운 정보들
제국군의 종이비행기 타이 파이터에 대해 [4]
조니공공칠빵
01-29
2
땃쥐의 일상!
따땃쥐 솔랭 근황 [2]
Moderator 땃쥐네가장_나싱
01-28
2
다채로운 정보들
우리의 친근한 스토미, 제국군 스톰트루퍼에 대해 [2]
조니공공칠빵
01-28
1
※공지사항※
귀찮아서 미루던 기부 공지 [1]
Broadcaster 따땃쥐
01-22
2
다채로운 정보들
사이온이 좋은 15가지 이유 [2]
조니공공칠빵
01-12
1
꾸끼의 일상!
제가 운동을 안하니까
Broadcaster 따땃쥐
01-09
인기글 글 쓰기